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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3년 11월의 호국인물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3-11-04 조회수 1283
파일첨부 monthlyp_2013103015242300.jpg

손원일(孫元一) 제독
Admiral. Son Won-il
(1909. 5 . 5 ~ 1980. 2. 15)

손원일 제독은 1909년 5월 5일 평안남도 강서군 증산면 오흥리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의정원 의장(국회의장)을 지낸 명망있는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와 박신일 여사 사이에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부친의 독립운동으로 인해 어린시절 중국으로 망명하여 1930년 상해 중앙대학교 농학원 항해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15,000톤급 독일 상선 람세스호 등에서 승무원으로 근무하면서 국제감각을 익히는 한편 외국어 습득에 주력하여 영어ㆍ독일어 등 5개 국어를 능숙히 구사하였다.
1945년 조국의 광복과 더불어 귀국한 후 “이 나라 해양과 국토를 지키겠다”는 신념과 포부를 갖고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규합한 뒤 해군창설에 투신하였다. 식량과 물자의 부족 등 초창기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하고 1945년 11월 11일 해군의 모체인 해방병단을 창설한 후 초대 단장에 취임하였다.
아울러 해군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뛰어난 인재의 양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1946년 1월 17일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인 해군병학교를 세우고 초대 교장을 역임하였다. 같은 해 6월에는 해방병단이 해안경비대로 개칭되자 해안경비대 총사령관 겸 병학교장(兵學校長)이 되었다.
1948년 8월 정부가 수립되어 해안경비대가 해군으로 편입됨에 따라 초대 해군참모총장에 임명되었다.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1948년까지 총 37척의 함정을 인수하였으나 초창기 우리 해군은 전투함을 한 척도 보유하지 못한 실정이었다. 이에 1949년 6월 함정건조기금갹출위원회를 구성하고 모금운동을 펼쳐 12만 달러의 자금을 마련한 후 1949년 10월 미국으로 건너가 백두산함을 비롯한 4척의 전투함(PC)을 구입하였다. 이 중 백두산함은 6ㆍ25전쟁 개전 초 대한해협 해전에서 후방침투 병력을 태운 북 수송선을 격침하는 눈부신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또한 해군력 증강을 위해 호위함(PF)을 추가로 인수하는 한편 군종제도를 도입하고 전사편찬실 및 해군음악대 등을 발족시켜 군의 사기 진작과 조직 체계의 현대화를 위해 노력했다.
6ㆍ25전쟁 중에는 해군총참모장으로서 UN해군과 함께 동ㆍ서ㆍ남해의 제해권을 확보하고, 6월 25일 대한해협 해전을 시작으로 통영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 서울탈환작전 등 주요 작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우방 각국 해군과의 강력한 제휴와 긴밀한 협동 하에 전투함정의 증대 등 해군의 확장ㆍ강화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3군의 긴밀한 연락을 도모하는 등 군무수행에 뛰어난 재질을 발휘하였다.
1953년 6월 30일 해군총참모장(해군중장)을 끝으로 예편한 뒤에는 그 해 8월 제5대 국방부장관으로 취임하였다. 재직기간 동안에는 능숙한 외교수완을 발휘하여 막대한 군원을 획득함으로써 국방력 증강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행정면에 있어서도 국군묘지 창설, 군목제도의 활성화, 전시연합대학과 국방대학원 창설, 국내외 위탁교육제도의 신설 등 인재양성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이 같은 공적으로 생전에 미국 은성훈장, 태극무공훈장 2회, US 메달, 6.25 및 UN 종군기장 등 수많은 훈ㆍ기장을 수상하였다. 1980년 2월 15일 향년 71세로 타계하였으며, 제독의 유해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장군묘역 2-5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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