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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3년 12월의 호국인물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3-12-03 조회수 2084
파일첨부 monthlyp2_2013120310241618_1.jpg

송요찬(宋堯讚) 육군중장
LTG. Song Yoh-chan
(1918. 2. 13 ~ 1980. 10. 19)

1918년 2월 13일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매산리에서 송영달 선생의 2남 6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본관은 여산이다. 어린시절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후 화성공립보통학교와 봉산중학교를 졸업하였다. 해방 후에는 조국의 간성이 되고자 1946년 1월 군사영어학교에 입교하여 5월 1일 육군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 8연대 3대대장, 9연대장, 15연대장을 거쳐 1950년 4월 18일 헌병사령관(대령)에 임명되었는데, 당시 미군들로부터‘타이거 송’이라는 별칭을 들을 정도로 교육훈련의 명수로 이름을 떨쳤다. 건군 초기에는 군내 불순세력의 제거와 공비토벌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개전 초기 전선에서 낙오하는 장병들을 수습하는 한편 후방지역의 민심안정에 주력하였다. 1950년 9월 1일에는 수도사단장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기 위한 안강․기계지구 전투에 참전하였다. 이때 북한의 민족보위상인 최용건이 직접 이곳 전선까지 내려와서 전쟁을 지도하였지만, 9월 7일부터 7일 동안 무려 7차에 걸쳐 전개되었던 곤제봉 공방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북한군의 9월 공세를 물리쳤다. 이로써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작전을 실시하는데 크게 기여하여 부임한지 20일만에 육군준장으로 진급하였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에 이어서 북진작전을 실시하여 10월 1일 국군의 최선봉으로 38도선을 돌파하였으며, 신고산 일대에서 전차와 야포 등 1만여 점의 적 장비를 노획하는 등 개전 이래 최대의 전과를 올렸다. 그후 한․중 국경을 목전에 앞둔 시점에서 중공군의 참전으로 부득이 흥남을 통해 해상철수하게 되었으나, 곧이어 1951년 1월 27일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작전 4일만에 강릉을 탈환하는데 성공하여 작전 직후 전선을 방문한 맥아더 사령관으로부터 치하를 받기도 하였다.
1952년 7월 8일 육군소장으로 진급하고 잠시 남부지구경비사령부의 초대사령관으로 전보되어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였으나 10월 8일 수도사단장으로 다시 전선에 복귀하여 지형능선탈환작전에 참여하는 등 크고 작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정전 직전에는 제8사단의 지휘를 맡아 1953년 6월 17일부터 7월 18일까지 전개된 금성 동남지구전투에서 2개 사단에 달하는 적군을 격파하고 지형능선고지 및 690고지를 탈환․확보하였으며, 국군 제2군단 정면에 대거 재침한 적의 공세를 역습으로 분쇄하여 주저항선을 사수하는 한편 피탈된 중요 고지를 순차적으로 탈환함으로써 적의 7․13 최후공세를 저지하고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1950년에는 미 은성훈장과 금성을지훈장을, 1953년과 54년에는 두 차례에 걸쳐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1960년 5월 23일 육군중장으로 예편한 후에는 1961년 6월부터 내각수반 겸 국방부장관을 역임하는 등 국가와 국군발전을 위해 노력하다가 1980년 10월 19일 향년 63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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