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0년 4월의 호국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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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전산부 | 등록일 | 2010-03-31 | 조회수 | 2743 |
파일첨부 | monthlyp_2010033114244759.jpg | ||||
1927년 5월 황해도에서 태어난 이세영 소령은 1943년 평양 제3공립중학교 3학년을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4년 육군비행학교를 졸업했다. 1945년 조국 광복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북한군 중위로 복무하던 중 숙청대상으로 몰리자 단독으로 월남하여 1948년 10월 대한민국 육군 항공사령부에 입대, 1950년 4월 공군소위로 임관했다. 곧이어 6.25전쟁이 발발하자 정찰기를 조종하여 적정 정찰, 전단 살포, 적 지상군 공격 등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수십 회의 정찰비행을 통해 낙동강 방어선 사수에도 크게 기여했다. 1951년 3월 대위로 진급하여 F-51전투기 조종사로 기종 전환 훈련을 마친 후 우수조종사로 선발되어 공군 제1전투비행단 (일명 백구부대)으로 전속되었다. 1951년 4월 3일 철원 서북방 이천지역에 대한 적 보급로 차단작전을 시작으로 첫 출격한 이세영 대위는 적 트럭 42대와 보급품 집적소 11개소 파괴, 적 군용건물 44동 파괴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1951년 4월 21일, 이천 서북쪽의 적 진지 격파임무를 부여받고 출격한 이세영 대위는 이천 상공에서 공격 목표물을 성공적으로 격파한 후 적 후방 보급로 차단을 위한 마지막 공격을 하던 중 적 대공포에 피탄되어 귀환이 어렵게 되자 자신의 애기(愛機)와 함께 적 보급품 집적소로 돌진하여 24세를 일기로 장렬히 산화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1951년 5월, 1계급 특진과 함께 동년 7월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