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09년 9월의 호국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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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전산부 | 등록일 | 2009-09-01 | 조회수 | 2944 |
파일첨부 | 009082814240037.jpg | ||||
1926년 10월 충북 옥천군에서 태어난 천봉식 공군대위는 옥천 이원 소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상업중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중 뜻한 바 있어 진로를 바꾸어 소년항공학교를 졸업했다. 해방과 함께 귀국한 뒤 1949년 간부 후보생 5기로 입대하여 소위 임관과 함께 항공사관학교에서 생도교육을 담당했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일어나자 천봉식 당시 중위는 L-4 연락기로 적정 정찰, 전단 살포, 지휘관 수송 등 하루에 무려 5~6회씩 총 45회에 달하는 출격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특히 천봉식 중위는 1950년 8월 15일 전략 요충지인 왜관 북방 300고지에서 한국군 1사단 13연대와 적 3사단이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일 당시 L-4 연락기로 유엔공군 F-51 전폭기 1개 편대를 300고지로 유도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아군이 고지를 점령하는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그러나 9월 1일 다부동 의성 방면에서 적진 깊숙이 정찰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 전투기 3대의 공격을 받아 안타깝게도 애기와 함께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정부는 고인의 전공을 기려 1계급 특진과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