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08년 10월의 호국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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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전산부 | 등록일 | 2008-09-30 | 조회수 | 4201 |
파일첨부 | 100101.jpg | ||||
10월의 호국인물 양헌수 장군(1816년 ~ 1888년) 전쟁기념관(관장 박장규)은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를 침공한 프랑스 함대를 패퇴시키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양헌수(梁憲洙) 장군을 2008년 10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발표했다. 양헌수 장군은 1816년 부사정 양종임(梁鍾任)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무예를 익혀 1848년(헌종 14)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고 이어 참상관에 올랐다. 1865년(고종 2) 제주목사 부임 중에는 부패한 관리였던 前 판관 백기호(白基虎)를 징계하는 한편 극심했던 태풍의 피해를 복구하고 선정을 베풀어 도민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1866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하는 병인양요가 발생하자 정족산성의 수성장이 되었다. 1866년 8월 10일, 병인박해를 빌미로 한강의 양화진까지 왔다가 물러났던 프랑스군은 다시 전함 3척, 포함 4척, 병사 1천여 명을 동원해 조선을 침략, 9월 16일 강화를 점령하고 한강을 봉쇄한 뒤 통상조약을 강요하며 조선을 협박해 왔다. 그러던 중 10월 3일 프랑스 함대 로즈(Rose) 제독이 보낸 해군대령 올리비에(Ollibier)의 부대 160명이 정족산성을 공격해 왔다. 양헌수 장군은 미리 군사 500명을 성문에 배치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한 뒤 치열한 전투 끝에 적 6명을 사살하고 거의 전 병력에게 부상을 입히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많은 무기를 노획함으로써 프랑스군을 패퇴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양헌수 장군은 한성부좌윤에 임명되었다가 1869년 황해도병마절도사로 부임했다. 재임시 선정을 베풀고 해적을 소탕하는 등 큰 치적을 쌓았으며 이후 어영대장, 좌포도대장, 금위대장, 공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시호는 충장(忠莊). 2008년 10월 9일 (목14:00)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는 후손을 비롯한 종중과 유관단체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양헌수 장군을 추모하는 현양행사가 거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