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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08년 9월의 호국인물
작성자 전산부 등록일 2008-09-04 조회수 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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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2월 서울에서 태어난 한주섭 중령은 경성 농업중학교 5학년에 재학 중 6.25전쟁이 일어나자 해병 간부후보 8기생으로 입교하여 1951년 7월 해병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후 해병 제1전투단 1대대 3중대 2소대장으로 보직된 그는 서부전선으로 이동할때까지 중동부 전선의 요충지인 펀치볼 지역의 전투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

1952년 10월, 해병 제1전투단은 펀치볼 지역에서 서부전선의 사천강 지역으로 이동하여 중공군 제65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당시는 쌍방간의 접촉선을 휴전선으로 한다는 휴전협정의 기본 원칙이 정해짐에 따라 38도선을 중심으로 피아간에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던 시기였다.

1952년 10월 2일 중공군은 전 전선에 걸쳐 인해전술로 추계 제1차 대공세를 감행해 왔다. 해병 제1전투단이 담당하고 있던 사천강 지역은 개활지와 구릉지대로 형성되어 있어 방어에 매우 불리한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아군은 중공군의 대공세에 맞서 싸웠으나 전초진지를 피탈당하고 다시 이를 탈환하기 위한 수차례의 역습도 번번히 실패하는 등 많은 전투력의 손실을 입고 있었다.

이때 한주섭 소위는 6차 역습 전투의 돌격 소대장의 임무를 받고, 소대의 선두에서 중공군의 완강한 저항을 뚫고 37전초진지 탈환에 성공했다. 또한 적군이 곧바로 1개 대대 규모의 병력으로 반격해 오자 한소위는 물러서지 않고 격렬히 맞서 적 50여명을 사살하는 등의 전공을 세우며 중공군의 반격을 격퇴했다.
한 소위의 역습 성공은 중공군에게 막대한 병력 손실을 입히고 그 기세를 꺾는데 크게 기여했다. 정부는 한주섭 소위의 전공을 기려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한 소위는 이후에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여러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으며 휴전 이후에도 해병대 발전에 기여하다가 1973년 중령으로 전역했다. 전역 후에도 살신성인의 군인정신과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활발한 사회 봉사활동을 하다가 1987년 56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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