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호국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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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월의 호국인물
작성자 전산부 등록일 2005-08-01 조회수 5055
파일첨부 432005072801800_1.jpg

전쟁기념관(館長 金石元)은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의승장으로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성 전투에서 순국한 영규(靈圭)의승장(? ~ 1592.8)을 2005년8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발표했다.

의승장 영규대사는 공주시 계룡면에서 태어나 일찍이 계룡산에 입산하여 수도했으며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로서 학식과 무예가 높았고 지략과 무리를 거느리는 능력이 뛰어났다. 공주 갑사(甲寺) 청련암(靑蓮庵)에서 수도를 하던 중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국 사찰에 격문을 보내 앞을 다투어 몰려온 승려 800여 명으로 의승군을 갖추었고 청주성에 있는 왜군을 진격하면서,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조헌선생과도 긴밀한 연락을 취하였다.
이무렵 청주성을 점거하고 있던 왜군이 충청우도로 진격하면서 관군을 패퇴시키자 영규대사가 이끄는 군사 수백 명은 왜적과 외롭게 대치하던 중 1592년 8월 2일, 조헌선생이 이끄는 의병과 연합하여 무기와 갑옷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결사항쟁의 정신으로 마침내 청주성 탈환에 성공하는 놀라운 전공을 거두었다.

이후 조헌선생이 끝까지 남아 죽기를 맹세한 700여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금산으로 진격할 때, 전라감사와 공주목사 등 관군이 때가 아니라며 협공을 머뭇거리자 “조헌선생 홀로 죽게할 수는 없다”며 조헌의 의병군과 합세하여 금산성으로 진격했다.
그러나 후속부대가 없는 것을 정탐한 왜군은 8월 8일 1만 5천명의 숫자로 의병군을 대대적으로 공격하였고, 이에 중과부적으로 조헌선생을 비롯한 700의병이 순국하니 이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700의사의 시신을 한데 모은 무덤이 금산 ‘칠백의총(七百義塚)’이다. 영규대사도 이 싸움에서 창자가 파열되는 극심한 상처를 입고 지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공주감영으로 향하던 중 안타깝게도 입적하고 말았다.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의승장이었던 영규대사는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후 1597년 청주성 탈환의 전공으로 의승장 중 최초로 당상관인 지중추부사에 추증되었다. 불교를 배격하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감안할 때 영규대사에 대한 이러한 예우는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영규대사의 선도적 의승활동은 이후 전국 각지에서 승려들을 중심으로 활발한 의병활동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전쟁기념관은 8월4일 오후 2시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조계종과 유관단체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영규대사를 추모하는 헌양행사를 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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