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0월의 호국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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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전산부 | 등록일 | 2004-10-01 | 조회수 | 4078 |
파일첨부 | ko_oct.jpg | ||||
「10월의 호국인물」김갑태 육군중령 전쟁기념관(館長 金石元)은 6·25전쟁 당시 강원도 인제 748고지 전투에서 빛나는 전공을 세운 김갑태(金甲泰) 육군중령을 2004년 10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발표했다. 김갑태 중령은 1924년 10월 1일 부산에서 태어나 1949년 5월 육군사관학교 8기로 졸업, 소위로 임관했으며 1951년 중공군의 1·2차 춘계대공세 당시 강원도 한석산-가리봉 전투와 현리전투 등 수많은 전투에 참가해 전공을 세웠다. 이후 1952년 4월, 제 3사단 22연대 1대대 1중대장으로 부임한 당시 김갑태 대위는 강원도 인제군 서화 북방, 우두산 일대의 방어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당시 사단의 전초기지였던 우두산 일대의 748고지(피의 고지)와 572고지(독수리 고지)는 이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사단의 주저항선까지 위협받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아군은 중공군과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1952년 10월 2일 1중대장 겸 1대대장 대리 임무를 부여받은 김갑태 대위는 일시 피탈당한 748고지 탈환을 위해 2개 중대로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더 이상의 전진이 어렵게 되자 예비병력인 1개 중대를 추가로 투입하고 선두에서 지휘하며 공격에 나섰다.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전 대대원이 고지 정상을 향해 돌격을 감행했고 맨 앞에서 공격을 독려하던 김대위가 가슴에 적 폭탄의 파편을 맞고 쓰러지자 전 대대원이 분기탱천하여 더욱 맹렬하게 고지를 행해 돌격, 마침내 748고지를 완전히 탈취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갑태 대위는 후송 3일 만에 전사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10월 7일(목 14:00)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는 유족과 육군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행사가 거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