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1년 8월의 호국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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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1-08-02 | 조회수 | 184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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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동(朴熙東) 공군준장 The Hero of August, Brigadier General Park Heedong (1924. 3. 7 ~ 1989. 7. 19) 박희동 준장은 1924년 3월 7일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났다. 1940년 일본군 소년비행병 과정을 통해 조종술을 배운 그는, 1948년 7월 조선경비대 항공부대에 항공병 제1기로 입대하여 국군 최초의 항공기인 L-4 연락기를 조종하였다. 조종경력과 기량을 인정받은 그는 10월 25일 공군소위(사관후보생 제3기)로 임관하였고, 1949년 10월 1일 공군의 독립 창설에 기여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직후 공군 최초의 전투기인 F-51D의 인수요원 10명에 선발되었다. 주일 미 공군의 이타즈케[板付] 기지에서 불과 며칠간의 훈련만을 받고 F-51D 전투기와 함께 복귀한 인수요원들은 당시 공군의 유일한 전투조종사로서 북한군의 남하 지연작전에 참가하였다. 박희동 대위(당시)는 복귀 다음날인 7월 3일부터 편대장으로서 출격하여 지연작전과 낙동강 방어전투, 북진 반격작전 등의 근접항공지원으로 크게 활약하였다. 이후에는 그가 가진 풍부한 전투비행 경험을 토대로 1951년 제1전투비행대대장(소령), 1952년 제1전투비행전대 작전처장 및 제1교육비행대장(중령), 1953년 제10전투비행전대장 등을 역임하며 후방차단작전과 근접항공지원 작전을 지휘하였고 총 38회의 전투출격을 기록하였다. 휴전 이후에는 1959년 기술교육단장, 1962년 공군사관학교 교장, 1966년 공군대학 총장을 역임하며 공군 전력의 양성에 기여하고 1968년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박희동 준장은 국군의 첫 전투기조종사이자 지휘관으로서 을지무공훈장과 미국 비행훈장(Air Medal)을, 휴전 이후 공군 전력양성의 공적으로 충무·화랑무공훈장 등을 수여받았다. 1989년 7월 19일, 향년 65세를 일기로 별세하였으며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