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1년 3월의 호국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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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1-03-03 | 조회수 | 18370 |
파일첨부 | 20210302.JPG | ||||
김교수 육군대위 (1923. 6. 19. ~ 1953. 7. 14.)
전쟁기념관은 3월의 호국인물로 김교수 육군대위를 선정하였다.
故 김교수 대위는 1923년 6월 19일 함경남도 함흥시 신보리에서 태어났다. 북한 치하에서 흥남공업대학 2학년을 수료하고, 1950년 12월 흥남철수작전을 통해 월남한 뒤 군에 자원입대하였다. 이후 육군종합학교 제32기를 거쳐 1951년 8월 18일 소위로 임관하여 국군 제6사단 제2연대 소속의 소대장으로서 2년 가까이 고지쟁탈전의 현장을 지켰다.
휴전을 불과 2주 앞둔 1953년 7월 10일, 금성돌출부를 방어하던 국군 제6사단은 중국군의 최후공세를 맞아 교암산을 둘러싸고 격전을 벌였다. 제2연대 제6중대장 김 중위(당시)는 12일 교암산 ‘가’고지의 진지를 인수하였으나, 다음날인 13일 21시부터 격렬한 포격에 이어 중국군 4개 대대규모 병력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사단의 전초진지 전체가 돌파될 위기에 처한 순간, 김 중위가 지휘하는 제6중대는 진지 내로 돌입한 적 부대와 백병전을 벌이고 6차례나 진내사격을 요청하며 14일 새벽까지 8시간 동안 적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대장 김 중위를 비롯하여 제6중대원 대부분이 전사하는 큰 피해를 입고 끝내 교암산을 빼앗겼다. 그러나 이들의 희생으로 사단은 인접부대를 주저항선으로 안전하게 철수시키고 금성천 일대에 전선을 정비하여 현재의 휴전선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정부는 최후의 순간까지 교암산 ‘가’고지를 지켜낸 故 김교수 중위의 공적을 기려 1953년 10월 13일 국군 최고의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훈기번호 제132호)과 1계급 특진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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