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5월의 호국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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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0-05-06 | 조회수 | 63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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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한신 육군대장은 1922년 12월 27일 함경남도 영흥(永興)에서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함흥공립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변호사가 되기 위해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법학과에 입학해 수학하던 중 태평양전쟁으로 귀국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1944년 병(兵)으로 입대, 간부후보생이 되어 견습사관(見習士官)중 광복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왔다. 1946년 월남 후, 국방경비 사관학교(現 육군사관학교) 제2기로 입교하여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6·25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수도사단 1연대장으로서 안강·기계전투, 38선 북진작전, 대관령전투 등 수많은 격전지에서 명성을 떨쳤다. 특히 낙동강 최후방어선의 요충지였던 안강·기계지역에서는 철수명령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여 북한군 12사단의 공세를 저지함으로써 국군의 방어선 유지와 반격작전 여건 조성에 결정적인 공훈을 세웠다. 또한 중공군의 춘계공세가 한창이던 1951년 5월 22일, 동해안의 전략적 요지인 대관령전투에서 2일간 처절한 사투 끝에 1개 사단 규모의 중공군을 격퇴하여 적의 남하를 저지하고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기여하였다.6·25전쟁 이후에는 수도사단장, 6군단장, 1군사령관, 합참의장 등의 주요 직위를 역임하였다. 특히 ‘잘 먹이고, 잘 입히며, 잘 재우는’ 사병복지의 구현과 이를 통한 교육훈련 제일주의를 실현함으로써 군의 기강확립과 강군 육성에 헌신했다. 그리고 합참의장 재직 시에는 국군 현대화 계획을 입안하여 자주국방의 기틀을 세우는 등 큰 업적을 남겼다. 나라와 군 발전을 위해 평생을 바친 그는 청렴결백의 표상과 국군의 사표(師表)로 불리며 존경을 받았다. 1996년 5월 6일 향년 74세를 일기로 타계했으며, 서울 국립 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되었다.정부는 그의 전공과 헌신을 기려 1953년 8월 27일 국군 최고의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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