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7월의 호국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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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전산부 | 등록일 | 2004-06-30 | 조회수 | 3687 |
파일첨부 | july_ko.jpg | ||||
전쟁기념관은 일제 강점기 무장독립운동을 펼치다 순국한 김지섭 독립운동가를 2004년 7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발표했다. 1884년 7월21일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선생은 20대 청년시절 상주보통학교 교원과 금산지방법원 서기로 재직하기도 했으나,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뜻을 같이하는 동지를 모아 만주·연해주·상해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1922년 의열단에 가입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벌어진 조선인 학살을 보복하기 위해 일본정부요인 암살계획을 세운 선생은 '제국의회'에 참석하는 일본총리 등 정부요인을 처단하기 위해 어렵게 폭탄과 여비를 구해 도쿄에 도착한다. 그러나 제국의회가 돌연 휴회되자 거사계획을 바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일왕의 궁성을 폭파키로 결심하고, 1924년 1월5일 관광객에 뒤섞여 궁성앞으로 접근한 후 일경을 향해 폭탄 한발을 던졌다. 이어 혼란을 틈타 뛰어들며 폭탄 2발을 궁성을 향해 던졌다. 폭탄이 불발돼 비록 거사는 실패했지만 이 사건은 일제를 경악케 했다. 자신들이 신으로 받드는 일왕의 궁성에 조선인이 폭탄을 들고 뛰어들 줄을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선생의 거사로 내무차관이 견책당하고 경시총감·경무부장·경찰서장 등 치안책임자가 줄줄이 파면됐다. 현장에서 체포된 선생은 혹독한 고문과 단식투쟁의 후유증으로 1928년 2월20일 지바형무소 독방에서 44세로 순국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7월 8일 오후 2시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는 김지섭 선생의 후손을 비롯한 종중과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광복회 등 독립유공단체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행사가 거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