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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8년 8월의 호국인물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08-03 조회수 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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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호국인물  



이범윤(李範允) 독립운동가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Yi, Beom-yoon



(1856. 5. 3 ~ 1940. 10. 20)



전쟁기념관(관장 박삼득)은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이끌었던 이범윤(李範允) 선생을 2018년 ‘8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발표했다.  



이범윤 선생은 1856년 경기도 고양군에서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등을 지낸 이경하(李景夏)의 아들로 태어났다. 법부대신 및 주러공사 등을 지낸 이범진(李範晉)이 그의 형이다.



조선 말 국내 농업경제가 붕괴되면서 많은 조선 농민들은 간도(間島)로 이주해 생업을 이어갔고 1900년대에는 그 수가 약 7만여 명에 달했다.



이에 정부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범윤 선생을 간도관리사로 파견했고 선생은 사포대(私砲隊)를 조직하는 등 간도지방 한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힘썼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선생은 사포대를 이끌고 러시아군과 함께 반일 군사작전에 참가했다.



1905년에는 연해주로 거처를 옮겨 본격적인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선생은 연추(煙秋, 노보키에프스크)를 활동 기지로 삼고 항일단체인 ‘창의회(彰義會)’를 결성,



이른바 연추의병부대(이범윤 의병부대)를 이끌게 된다.



여기에는 안중근 의사가 우영장(참모중장)으로 참여했다. 의병부대는 1908년 7월부터 9월까지 두만강 유역에서 수차례 일본군 수비대를 기습하는 진공작전을 전개해 일본군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후로도 선생은 국내 의병 항쟁에 호응하여 국권회복을 위한 무장항일노선을 견지했다. 



1911년 5월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된 권업회(勸業會) 총재로 추대되었다.



이 회는 유인석이 수총재, 최재형·최봉준이 부총재, 이상설이 의장, 홍범도가 경찰부장으로 구성된 전 노령(露領, 시베리아 일대) 최대 최고의 한인기관이었다. 



1919년에는 무장 독립운동단체인 ‘의군부’를 조직하여 총재가 되었고 1921년에는 ‘대한독립군’에 참여하였다.



신민부 조직 당시 참의원장에 추대, 성동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무관양성에도 힘썼다.



이후에도 일생을 항일운동에 헌신하다가 1940년 10월 20일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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