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호국인물
홍대선(洪大善) 해군 하사
Sergeant Hong, Dae-seon
1929. 1. 14 ∼ 1952. 1. 4
홍대선 하사는 홍사훈 선생의 5남 2녀 중 막내 아들로 1929년 1월 14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로 1가에서 태어났다.
1951년 10월, 교착상태에 빠진 6ㆍ25 전쟁의 활로를 만들어 내기 위해 북한군은 서해안 옹진반도에 진지를 새로 구축하고 우리 군이 주둔 중이던 서해안 도서 지역에 기습상륙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이에 우리 군은 해상을 통제하고 피난민을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해 탁수작전(濁水作戰)이라 불리운, 서해경비작전을 실시하였다.
홍대선 삼등병조는 1952년 1월 LST-801함(천안함) VP정장으로 이 작전에 참가하여 옹진반도의 순위도(巡威島, 현 황해남도 강령군 순위리)라는 섬에 모여든 민간인 840여 명을 안전하게 호송하라는 명을 받았다. 홍 삼등병조는 천안함의 단정 정장으로 출동하여 피난민을 모함(母艦)으로 실어나르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피난민의 절반을 수송하던 찰나 이를 발견한 북한군이 피난민을 향해 경기관총과 박격포로 총격을 가해와 삽시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북한군은 본선에서 사격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전마선(배와 육지를 연결하는 작은 배) 3정을 순위도에 상륙시켜 피난민들을 제압하려 하였다. 그러자 홍대선 삼등병조는 피난민 수송 임무를 동료에게 맡기고 스스로 적진으로 돌격, 전마선의 상륙을 저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를 저지하는 와중에 VP정(LST함에 딸린 상륙용 주정)이 치명적으로 손상되어 더 이상 작전을 실행할 수 없게 되었다.
바로 이때 홍대선 삼등병조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최악의 환경에서조차 피난민을 구해야한다는 맡은 바 임무를 포기하지 않고 인접한 예안리 해안에 홀로 상륙, 스스로 적의 표적이 되어 피난민으로 향하는 총격을 유인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피난민들의 희생을 감소시키고 단 한명의 피난민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혈혈단신으로 육지에서 적을 향해 기총소사하던 중 북한군의 전투함과 전마선에서 발사한 탄환에 흉부와 복부에 관통상을 입고 23살 푸른 젊음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 같은 홍대선 삼등병조의 위대한 희생을 바탕으로 순위도의 주민들은 안전하게 남쪽으로 피난할 수 있었고 작전은 최소한의 피해를 남긴 채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홍대선 삼등병조의 살신성인의 정신을 현양하기 위해 정부는 1952년 11월 10일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하였고, 대한민국 해군은 2002년 최첨단 유도탄 고속함에 그의 이름을 딴 홍대선함을 명명, 고인의 위대한 애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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