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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5월의 호국인물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7-05-11 조회수 5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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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호국인물(護國人物)



강민첨(姜民瞻) 장군

General Kang, Min-cheom

(963.11.29. ~ 1021.11.12.)



강민첨 장군은 963년(광종 14) 11월 29일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원윤(元尹) 보능(甫能)의 아들이다. 그는 15세에 진주 향교에서 시?서?예?악을 배운 후 고향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관직진출은 43세 때인 1005년(목종 8) 문과 제술과 을과에 급제하여 장사랑(將仕郞, 종9품 하)으로 시작하였다.

1010년(현종 원년) 12월 10일, 거란이 침입하였을 때 장군은 함경남도 애수진장(隘守鎭將)으로서 서경(평양)을 방비하였다. 1012년(현종 3) 5월 부주방어사로 재직할 때, 동여진(東女眞)이 청하(淸河)?영일(迎日)?장기현(長?縣)으로 쳐들어왔다. 장군은 문연(文演)?이인택(李仁澤)·조자기(曺子奇) 등과 함께 동여진군을 격퇴하였다.

1018년(현종 9) 12월 거란의 소손녕(蕭遜寧)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하였다. 거란은 993년(성종 12) 고려가 획득한 강동6주의 반환을 요구했다. 장군은 부원수로 임명되었고 상원수 강감찬 장군을 보좌하여 208,3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출전하였다. 고려군은 흥화진(興化鎭)에서 소가죽으로 냇물을 막고 숨어 있다가 거란군이 도착하자 물길을 터뜨려 대승하였다. 그러나 거란군은 포기하지 않고 개경으로 진군하였고 장군은 이들을 쫓아 자주(慈州, 평남 순천)에서 격퇴했다. 이듬해 2월 1일에는 퇴각하는 거란군을 귀주(龜州)까지 추격하여 접전을 벌였다. 갑자기 비바람이 남쪽에서 불자, 고려군은 그 기세를 타고 거란군을 격렬히 공격하였다. 거란군이 도망치자 장군은 이들을 추격하여 반령(盤嶺, 평북 삭주)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이 때 포로로 잡히거나 참수된 거란군이 1만명이었고, 달아난 거란군이 버리고 간 무기와 갑옷들로 길이 막힐 정도였다. 이 전쟁이 바로 10만의 거란군을 궤멸시킨 귀주대첩이며, 거란은 강동6주를 회복하려는 야망을 버리게 되었다.

장군은 귀주대첩에서의 전공으로 응양상장군 주국(鷹揚上將軍 柱國),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에 임명되었고 추성치리익대공신(推誠致理翊戴功臣)에 녹훈되어 식읍 300호를 하사받았다. 1020년(현종 11)에는 지중추사(知中樞事) 겸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11월 12일 59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시호는 은열(殷烈)을 추시받았고 태자태부(太子太傅)에 추증되었다. 1025년(현종 16) 장군의 생전 공로에 대한 포상이 부족하다 여겨져 아들 단(旦)에게 관직이 수여되었다. 1046년(정종 12)에는 공신각에 장군의 영정을 걸었다. 묘소는 충청도 예산에 있으며, 탄생지인 진주시 옥봉동에는 은열사(殷烈祠)가 건립되어 현재까지도 후손들이 장군의 위업을 기리고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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