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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6년 11월의 호국인물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11-01 조회수 6053
파일첨부 monthlyP_2016102517242039.jpg

11월의 호국인물



정환직(鄭煥直) · 정용기(鄭鏞基) 의병장

Righteous Army Commander Jeong, Hwan-jik ? Jeong, Yong-gi

(父 : 1843 ~ 1907), (子 : 1862 ~ 1907)



정환직(鄭煥直)·정용기(鄭鏞基) 선생은 신돌석 의병부대와 함께 경상도 지역을 대표하는 의병부대인 산남의진의 부자(父子) 의병장이다. 1905년 을사늑약 직후 항일의병을 조직하고 영천을 중심으로 한 경북 남동부 일대에서 그 위세를 크게 떨쳤다. 특히 두 부자가 교대로 산남의진의 의병대장에 올라 항일전을 전개하던 끝에 모두 순국하였다.

정환직 선생은 1843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영일(迎日), 호는 동엄(東嚴)이다. 의금부 금부도사를 거쳐 삼남참오령, 토포사, 시종관, 삼남도찰사 등의 관직을 두루 지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고종 황제는 당시 중추원 의관으로 있던 정환직에게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라는 밀지를 내렸다. 정환직 의병장은 아들 정용기(1862년 영천 출생, 호는 단오(丹吾))와 거의(擧義)를 상의한 후 자신은 서울에서 군자금과 무기를 수집하고 아들은 고향 영천에 내려 보내 의병을 모집하게 한 뒤 서울로 진격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했다.

1906년 3월 정용기는 이한구ㆍ정순기ㆍ손영각 등과 함께 산남의진(山南義陣, 山南=영남)을 결성하고 의병대장이 되어 항일전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신돌석의병을 돕기 위해 경주로 진군하던 중 아버지 정환직이 서울에서 체포되었다는 경주진위대의 간계에 속아 체포되었으나, 고종의 특명으로 대구감옥에서 석방되었다. 그후 흩어진 산남의병을 재규합한 뒤 영해ㆍ청하ㆍ청송ㆍ포항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하며 위세를 크게 떨쳤다. 그러나 1907년 9월 영일 입암전투에서 일본군 영천수비대를 맞아 격렬히 싸우다 포탄에 피격되어 전사하고 말았다.

이에 정환직 의병장은 아들을 대신해 몸소 산남의진 제2대 대장이 되어 흩어진 의병을 수습하여 진영을 정비하고 영일의 북동대산을 본진으로 하여 본격적인 대일 항전을 전개하였다. 청하ㆍ흥해ㆍ신녕ㆍ의흥ㆍ영덕 등지에서 일본군 분파소를 공격하고 무기를 탈취하는 등 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영덕전투 후 경주로 이동중 청하면 각전에서 일본군에 피체되었다. 국권회복을 위해 희생한 이들 부자(父子)의 공훈을 기려, 정부에서는 정용기 의병장에게는 독립장(1962년)을, 정환직 의병장에게는 건국훈장 대통령장(1963년)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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