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덕(崔用德) 공군 중장
Lt. Gen. Choi Yong-duck
(1898. 9.19 ∼ 1969.8.15)
최용덕 장군은 1898년 9월 19일 서울 성북동에서 태어났다. 십대의 나이에 일제의 압제를 피해 중국으로 이주하여 청소년기를 보냈다. 실력으로 싸워서 우리 주권을 회복하자는 결심으로 군문(軍門)을 지원하여 1920년, 중국 육군군관학교에 이어 공군군관학교를 차례로 졸업하였다.
1919년에 시작된 3·1운동이 조선 각지에서 들불같이 번져가자 중국 봉천, 안동 등지에서 선전문과 무기 등을 운반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후 장군은 임시정부 군무부 항공건설위원회 주임, 광복군 총사령부의 총무처장, 참모처장, 사령관 등을 역임하면서 중국 항일군대와 입체작전을 전개하는 등 조국의 독립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해방 후에는 공군 창설 주역 7인 중 한명으로 활동하며, 1948년 항공부대 창설을 위해 조선경비대 보병학교에서 교육을 수료 후 항공간부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48년 7월 항공부대장으로 보임되어 항공분야 체제발전과 항공요원 양성에 기여하였으며 이후 대한민국 초대 국방차관에 임명되어 국군조직법의 초안을 작성 시, 공군이 독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공군사관학교장으로 재직하며 김포기지 방어를 위해 김포지구 경비사령부를 편성하여 북한군과 대치하였으며 이외에도 항공기지사령관 및 작전참모부장 임무를 수행하였다.
1952년 12월에는 제2대 공군참모총장에 취임하여 휴전이 될 때까지 공군의 항공작전을 총 지휘하였으며 미군과 협조하여 군원사용계획서를 작성하여 대한민국 공군력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1953년 2월에는 공군이 보유한 F-51D 전투기를 비롯한 각종 항공기의 증가에 따라 제 1전투비행단 소속으로 강릉기지에서 단독출격작전을 수행하던 제 10전투비행전대를 제 10전투비행단으로 승격시켰으며 조종사 양성의 전문화를 위해 제 1전투비행단을 제 1훈련비행단으로 개편하였다. 또한 미군 지도하에 실시하던 정보교육을 한국공군이 수행하기 위해 공본 직할로 서울에 정보학교를 세우고 군용시설에 대한 신축 및 보수를 담당하는 제 43시설전대를 창설하였다.
전쟁 후에는 국산 항공기‘부활’호를 제작하여 대한민국 공군 항공기술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 통일된 공군의 모습과 정체성 확립을 위해‘공군가’를 포함하여 초기 공군의 여러 군가를 작사하고‘공군의 전통’이라는 구호를 제정하기도 하였다. 공군사관학교장으로 재직 시에는 공군사관학교 교가를 직접 작사하고“공사십훈”등을 만들어 공군의 전통과 맥을 잇는데 노력하였다.
이러한 공적으로 생전에 태극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등 수많은 훈· 기장을 수상하였다. 1956년 11월 1일 공군 중장으로 군문을 나섰고 정치적 변혁기에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지조를 지킨 참 군인이었던 최용덕 장군은 1969년 8월 15일 향년 72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장군의 유해는 현재 국립서울현충원 장군묘역 1-29에 안장되어 있다.
♠ 주요교육사항
- 1916년 : 중국 육군군관학교 졸업
- 1920년 : 중국 공군군관학교 졸업
- 1940년 : 중국 육군대학 졸업
- 1948년 : 조선경비대 보병학교 및 조선경비사관학교 졸업
♠ 주요경력
- 1948년 04월 01일 : 공군창설 7인간부의 일원으로 조선경비대 보병학교 입교
- 1948년 05월 14일 : 조선경비대 경비사관학교 졸업후 육군소위 임관
- 1948년 07월 09일 : 육군항공부대 사령관에 보임
- 1948년 08월 16일 : 대한민국정부 수립과 동시에 초대 국방차관에 보임
- 1950년 10월 20일 : 항공기지사령관
- 1951년 05월 14일 : 공군사관학교 교장
- 1951년 07월 06일 : 작전참모부장
- 1952년 12월 01일 : 제2대 공군참모총장(공군중장)
- 1954년 11월 19일 : 공군참모총장 해임
- 1955년 03월 15일 : 공군참모총장 고문
♠ 주요상훈
- 금성충무무공훈장(1951)
- 공비토벌기장, 6.25종군기장, 금성을지무공훈장, 대통령수장(1952)
- 태극무공훈장(1953)
- UN 종군기장, 대통령수장(1954)
- 미공로훈장(1957)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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