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호국인물
  • 홍보마당
  • 이달의호국인물
제목 2015년 3월의 호국인물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5-04-10 조회수 6060
파일첨부 monthlyP_2015022710244623.jpg

3월의 호국인물(護國人物)



서일(徐一) 독립군 총재

The Independent Army Commander Seo Il

(1881. 2. 26 ~ 1921. 8. 27)





초명은 기학(夔學), 호는 백포(白圃), 본관은 이천(利川)이다. 1881년 2월 26일 함경북도 경원군 안농면 금희동에서 서재운(徐在云)의 독자로 태어났다.

어려서 김노규(金魯奎) 선생의 문하에서 한학(漢學)을 배웠으며 주역을 공부한 후 1902년 함경북도 경성군 함일학교(咸一學校)를 졸업했다. 졸업 후 1910년까지는 교육사업에 종사하였으며, 한일병합이 되자 1911년 동만주 왕청현(王淸縣)으로 망명하여 청일학교(靑一學校)와 명동중학교(明東中學校)를 설립하여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교육구국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대종교에 입교하여 시교사(施敎師)로서 포교에 힘써 수만명의 교우를 얻고 동일도본사(東一道本司) 전리(典理)와 총본사 전강(典講)이 되었고, 뒤이어 사교(司敎)가 되고 영선(靈選)에까지 올랐다. 이를 바탕으로 자유공단(自由公團)이라는 비밀단체를 조직하고 약 1만 5천여 명의 단원을 거느린 단장으로 독립군 활동을 준비하였다. 또한 만주로 들어오는 망명 의병을 규합하여 중광단(重光團)을 조직하고 단장이 되었다.

1918년 만주와 러시아령에 있는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대한독립선언서(일명 무오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국내에 3?1운동이 일어나자 계화(桂和) 등과 함께 중광단을 정의단(正義團)으로 개편하여 단원을 모집하는 한편 신문을 간행하여 독립사상을 격려하는 등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10월 정의단을 군정부(軍政府)로 개편한 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의해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로 명칭을 변경하고 본영을 왕청현(汪淸縣) 서대파구(西大坡溝)에 두고 체코군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하여 무장을 갖추었다.

1920년 김좌진과 함께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찌르는 공적을 세웠다. 이후 일본군의 추격이 계속되자 주력부대를 북만주 밀산현(密山縣) 당벽진(當壁鎭)으로 이동시켰으며, 국민회 독립군의 안무군(安武軍)?홍범도군(洪範圖軍)?광복단(光復團)?도독부(都督府)?의군부(義軍府)?혈성단(血誠團)?야단(野團)?대한정의군정사(大韓正義軍政司) 등 여러 부대를 통합하여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조직하고 총재가 되었다. 자유시참변으로 타격을 입고 밀산에서 재기를 준비하던 중 1921년 8월 26일 수백 명의 토비(土匪)들의 야습을 받게 되자 다음날인 27일 서일은 독립군 지휘자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자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독립장을 추서했다.


의견달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