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호국인물(護國人物)
최용남(崔龍男) 소장
Major General Choi Yong-Nam
(1923. 10. 15 ∼ 1998. 11. 28)
최용남 소장은 1923년 10월 15일 평안남도 용성군 사기면 심산동에서 출생하였다. 신의주동중학교,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고 1944년 입대하여 광복 후 1945년 9월 7일 육군소위로 제대했다. 1946년 5월 1일 80048의 군번을 부여받고 해군참위(소위)로 임관과 동시에 진해기지교육대 교관에 보임된 후 함정부 부관과 신병교육대장 등을 역임하고 6?25전쟁을 불과 두 달 앞둔 1950년 4월에 제2함대 PC함장으로 부임하였다.
1950년 6월, 당시 최용남 소장은 대한민국 해군이 보유한 유일한 전투함 ‘백두산’함(PC-701)의 함장이었다. 전쟁 발발과 동시에 동해안의 옥계 등지에서 북함함선들이 출현함에 따라 긴급출동을 명령 받은 그는 출항 도중 20시 12분 부산 동북방 30마일 해상에서 남하하는 북한 무장수송선(1,000톤급, 무장병력 600여명 탑승)을 발견하였다. 이에 백두산함은 별다른 사격연습과 교전경험도 없이 야간과 악천후라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적을 추격하여 치열한 공방전 끝에 6월 26일 1시 38분경 부산 동남방 11마일 해상에서 격침시켰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6?25전쟁의 숨겨진 분수령’으로 평가받는 ‘대한해협해전’이다. 이를 통해 적 게릴라에 의한 후방교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고, 유엔함정이 병력과 군수물자를 부산항으로 안전하게 수송할 수 있게 하였다.
최용남 소장은 이 밖에도 서?남해안 봉쇄작전을 펼쳐 1950년 7월 5일부터 7월 31일까지 완벽한 해상봉쇄작전으로 북한군의 해상침투를 저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950년 7월 31일에는 여수 해상에서 YMS-504, 512 정을 지휘하여 여수 철수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도 하였다. 또한 9월 13일부터 14일까지 군산 근해에서 영국 해군과 양동작전을 펼쳤고,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시에는 한국해군의 기함으로써 참전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일조하였다.
또한 최용남 소장은 전쟁이 끝날 무렵인 1953년 7월 7일부터 해병학교장으로 부임해 강철 해병의 주역들을 양성하였으며 사령부 작전국장, 사령부 참모부장 겸 군수국장 등 정책참모로 활동하였다. 국가는 금성충무무공훈장과 공비토벌기장, 방위포장, 미 은성훈장 등 수많은 훈?포장을 수여하여 그 노고를 치하하였다. 1965년 해병소장으로 예편한 이후에도 故 최용남 소장은 국가발전을 위해 많은 활동을 펼치다 1998년 11월 26일 향년 76세를 일기로 타계하였으며 현재는 대전 국립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치되어 있다.
광복과 함께 우뚝 선 대한민국 해군의 최초의 군함인 백두산함을 이끌고 6.25전쟁의 국면을 전환시킨 역사적 ‘대한해협전투’의 명 지휘관이자 해병 전투단장, 해병학교 교장, 해병대 부사령관, 제1상륙사단장을 두루 역임하며 해군, 해병의 신화를 이룩한 故 최용남 소장의 용맹과 지략은 대한민국 바다를 지키는 충혼의 넋으로 길이 칭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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