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4년 8월의 6.25 전쟁영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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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4-08-04 | 조회수 | 38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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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의 6∙25전쟁 영웅으로는 6∙25전쟁 중 가장 절체절명의 전투로 손꼽히는 안강-기계전투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우고 전사한 강희중 일등상사가 선정됐습니다. 강희중 일등상사는 1926년 전북 익산에서 출생해 1947년 조선경비대에 입대하였고 18연대 1대대 1중대 1소대 선임하사로 대한민국을 수호하였습니다.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 초반 국군은 엄청난 위기에 몰렸습니다. 국군은 중무장한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열세한 병력과 무기로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8월 초에는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하고 맙니다. 그리고 낙동강지구전투의 최대 격전지인 다부동 전투, 포항전투, 기계전투, 영천전투 등 낙동강 지구 곳곳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한 최후의 혈전이 연일 벌어졌습니다. 특히 강희중 일등상사가 전투를 치르고 있던 포항과 안강에 이르는 기계지역은 끊임없이 주인이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있었던 전투입니다. 기계-안강전투는 1950년 8월 9일부터 9월 22일까지 기계와 안강, 포항과 경주 북부 일원에서 국군 1군단 예하 수도사단이 북한군 유격부대인 766부대로 증강된 12사단에 맞서 남진을 저지한 전투인데요. 국군과 유엔군은 8월 1일을 기해 낙동강에서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고, 국군 1군단은 북한군 주력이 안동-의성-영천 접근로에 투입될 것으로 판단하고, 예하 8사단과 수도사단을 경북 의성과 길안 일대에 각각 배치하였습니다. 북한군은 국군과 유엔군이 방어선을 확고히 하기 전에 섬멸하기 위하여 8월 5일을 전후하여 낙동강 일대 모든 전선에 걸쳐 일제 공격을 감행합니다. 이 때문에 마산~왜관~영덕에 이르는 방어선 곳곳이 위험해졌고 길안 일대의 수도사단 방어진지도 위기를 맞이합니다. 북한군은 이틈을 타서 8월 9일 기계를 점령하고 말았는데요. 이는 대구․포항 등지까지 위험해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때문에 육군본부는 기계일대를 탈환하여 방어전을 펼친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강희중 일등중사는 1950년 8월 18일 피탈된 기계일대 탈환전에서 주도 면밀한 공격행동으로 적진에 침투하여 사전에 요지를 점령하고 적의 퇴로를 차단하여 적을 격멸하였습니다. 강희중 일등중사와 제1중대는 이 전투에서 사살 1,245명, 포로 17명, 다수의 무기와 탄약 등을 노획하고 북한군의 부산방면 진출 기도를 저지하는 지대한 공을 세웠습니다. 당시 국방부장관은 당시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장병들의 노고를 치하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강희중 일등중사는 9월 3일 2차 안강-기계전투에서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탄에 의해 장렬히 산화하고 말았는데요. 이러한 공로로 1950년 12월 30일 화랑무공훈장을 추서 받고 일등중사에서 일등상사로 일계급 특진하였습니다. 강희중 일등상사가 안강-기계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북한군을 막았던 8월. 지금의 대한민국의 평화를 만들어준 수 많은 참전용사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넋을 기리며 뜨거운 태양보다 더 뜨겁게 조국을 사랑한 8월의 6∙25전쟁영웅 강희중 일등상사를 꼭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