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4년 7월의 호국인물 | ||||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4-07-03 | 조회수 | 2253 |
파일첨부 | bbb2.jpg | ||||
김재현(金裁鉉) 기관사 Engineer Kim Jae-hyun (1923. 9. 21 ∼ 1950. 7. 19) 김재현 기관사는 1923년 9월 21일 충남 논산시 노성면 호암리 99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44년 3월부터 대전철도국 소속 기관사로 재직하였다. 6·25 전쟁으로 대전시가 북한군의 손에 들어가던 날인 1950년 7월 19일 충북 영동역에서 군수물자 후송작전에 참여 중이던 그는 미군 결사대 30여 명을 기차에 태우고 이미 적군이 점령한 대전까지 가서 그곳에 남아있는 미군 제24사단장인 딘소장과 우군을 구출해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대전에 남아있던 국군은 이미 16일에 철수한 상태로 대전으로 향하는 모든 철로는 북한군의 통제 하에 놓여 있었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적탄 속을 뚫고 기차는 대전역에 도착했으나 사선을 통과하는 동안 결사대원 27명이 전사하였다. 결국 결사대는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총탄세례로 벌집이 된 기관차를 몰고 다시 귀로에 올랐다. 기관차가 대전시 판암동 근처의 적진 속을 달려 돌아올 무렵 김재현 기관사는 전신에 8발의 총상(가슴 관통상)을 입고 28세의 젊은 나이로 전사하였다. 김재현 기관사가 구출하고자 한 윌리엄 딘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도왔던 군정장관이자 한국 지형을 알고 있는 유일한 미군 지휘관이었기 때문에 당시 한국전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철도는 가장 중요한 육송교통수단이었기에 항상 적의 주 공격대상 이었다. 그러나 김재현기관사를 포함한 참전 철도용사들은 희생을 무릅쓰고 기꺼이 병력과 군수물자 및 피난민을 수송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힘이 되었다.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임무완수를 위해 운전대를 놓지 않았던 김재현 기관사의 숭고한 정신을 본받고자 1962년 순직비가 건립되었고 1983년에는 국가로부터 공적을 인정받아 철도인으로는 최초로 국립서울현충원 장교묘역 07-5-057에 안장되었다. 미 국방부는 2012년 6월 26일 고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특별민간공로훈장(Secretary of Defense exceptional civilian service award)을 추서하였다. 이 훈장은 미 정부가 민간인이나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격으로 국내 수상자는 고인이 처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