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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3년 2월의 6.25전쟁영웅
작성자 전산부 등록일 2013-02-04 조회수 2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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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의 6∙25전쟁영웅은 폴 프리먼 미국 육군대령입니다.

폴 프리먼 육군대령은 지평리 전투에서 몽클라르의 프랑스 대대를 포함한 미 23연대 전투단을 지휘하며 지평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랍니다. 프랑스 몽클라르 장군은 2012년 2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소개해 드린 적이 있는데 기억나시나요?(2012년 2월의 6∙25전쟁영웅 포스트 보기)

여기서 잠깐, 여러분은 지평리 전투 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지평리 전투는 6∙25전쟁 중 중공군 개입 이래 UN군 최초 승리 전투이자 2차 반격작전의 근간이 된 전투입니다. 또한 몽클라르 장군이 지휘하는 프랑스군대와 폴 프리먼 대령이 지휘하는 미 2사단 23연대가 인해전술로 몰려오는 중공군의 포위공격을 받아 나흘동안 밤낮으로 치열하게 전투를 하였는데요. 6∙25전쟁 중 서울 재탈환의 계기를 만든 역사적인 전투이기도 합니다.

지평리 전투 당시 국군과 미군은 중공군의 공격에 버티지 못해 후퇴한 상태였고, 미 23연대 전투단만 홀로 진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때 프리먼은 지평리 일대의 주요 고지를 과감히 포기하고, 지름 1.5km에 지나지 않는 작은 원형방어진지를 편성하는 기상천외한 작전계획을 수립해 전투병력을 낮은 야산지대에 배치하는 전술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8차례나 중공군은 진격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지평리를 차지하기 위해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이 치열한 격전 중에 프리먼의 지휘소 텐트에 중공군의 박격포탄이 떨어져 연대 정보장교가 전사하고 프리먼도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미 10군단장은 프리먼을 곧바로 교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가 우리 부대원들을 이곳으로 끌고 왔으니 마무리도 제 손으로 직접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후송을 거부했고, 평소 프리먼을 믿고 따르던 장병들은 그런 상관에 모습에 오히려 더욱 힘을 내며 프리먼과 함께 끝까지 전선을 지켜내며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지평리 전투는 미군과 프랑스군, 국군이 병력과 화력의 열세에도 인해전술을 펼치던 중공군 5만여 명의 파상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6∙25전쟁 10대 전투 중 하나로 꼽힙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지평리전투를 남북전쟁의 판도를 가른 게티즈버그 전투와 견주며 승리로 이끈 폴 프리먼 대령을 치하했으며, 이후 폴 프리먼은 사관학교 교재에 실릴 정도로 명성을 얻게 되었답니다.


부상을 입고도 자기가 맡은 바 끝까지 임무를 다하며 부하들을 독려한 폴 프리먼 대령의 책임감과 사명감... 우리 모두 잊지 말고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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