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2년 8월의 호국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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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전산부 | 등록일 | 2012-08-01 | 조회수 | 1874 |
파일첨부 | monthlyp_2012073117240631.jpg | ||||
전쟁기념관은 일제 강점기 항일무장투쟁을 하다가 전사한 양세봉(梁世奉) 독립운동가를 2012년 8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발표했다. 양세봉 선생은 1896년 평안북도 철산 출생으로 1919년 3·1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평안북도 천마산을 근거로 한 항일무장단체인 천마산대(天摩山隊)에 입대하여 일본 행정기관 파괴, 친일파 암살 등의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20년 천마산대를 따라 만주로 건너가 광복군총영에 가담하여 활약하다가 1923년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 소대장과 제3중대장을 역임했다. 이후 선생은 대한통의부 중대장, 정의부 중대장, 국민부 제1중대장 등을 역임하며 일제 기관 습격, 밀정 처단 등 무장활동을 전개했으며 1929년 조선혁명군이 조직되자 부사령관을 거쳐 총사령관이 되어 항일 무장투쟁을 지휘했다. 1932년 일본군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석권하자 재만 중국군과 연합작전을 펼치기로 하고 한·중 연합군을 편성했다. 1932년 3월, 선생이 가담한 한·중 연합군은 병력을 총동원하여 공격해 오는 일본군에 맞서 싸운 끝에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영릉가성(永陵街城)에 이어 상협하(上夾河)까지 점령하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또한 선생은 조선혁명군 군관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을 맡아 5만의 군대를 훈련시키는 등 혁명군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후로도 홍경성전투, 노구대전투, 쾌대모자전투에 참여하여 연전연승을 거두던 선생은 1934년 밀정의 계략으로 일본군에 포위되자 대원들과 함께 치열한 전투 끝에 전사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2012년 8월 2일(목 14:00)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는 유관단체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행사가 거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