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백마고지전투 육탄삼용사 고"안영권 하사 추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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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 김제시재향군인회 | 등록일 | 2010-10-13 오전 8:36:43 | 조회수 | 1057 |
- 백마고지 삼군신 - 넓은 철원평야를 차지하느냐 못차지하느냐의 결정적인 갈림길이 되었던 10일간의 백마고지(395고지) 전투는 한국전쟁 6·25 전쟁사에 가장 치열한 전투로 기록되어 있다. 서로 고지를 차지하기를 각각 12번, 총 24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가운데, 국군과 중공군은 엄청난 물적 인적 피해를 내며 필사적인 전투를 벌였다. 그런데 우리 국군이 중공군으로부터 이 고지를 탈환할 당시, 공격부대의 선두에서 아군의 전진을 가로막는 적의 중화기진지(기관단총진지)를 목숨을 바쳐 폭파하고 장렬히 산화함으로써 고지탈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백마고지 3용사’- 강승우(康承宇) 소위(1930.11.23 남제주군 출생), 오규봉(吳奎鳳) 일병(1928.10.4 천안 출생), 안영권(安永權) 일병(1924.11.10 김제 출생)이다. 1952년 10월 12일 오전 8시, 탈환전의 명령을 받은 아군의 공격부대는 ‘죽어도 이 고지에서 죽고 살아도 이 고지에서 살자’는 비장한 각오로 진격을 개시하였다. 일진일퇴, 앞서간 전우는 쓰러지고 그 시체를 방패 삼아 다음 용사가 나아갔지만 중공군의 중화기진지에서 무차별 쏘아대는 기관단총 사격 앞에 그만 공격이 주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절대절명의 순간에 몸을 던져 살신성인으로 적의 중화기진지를 폭파하기 위해 선뜻 나선 3용사가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강승우 소위와 오규봉, 안영권 두 일병이었다. 이들은 다이너마이트와 박격포탄을 넣은 배낭을 둘러매고 적진 속으로 돌진했다. 먼저 오규봉 일병이 적 자동화기 진지를 폭파하기 위해 나아갔고, 강승우 소위와 안영권 일병이 엄호사격을 하며 뒤따랐다. 적 진지에 어느 정도 근접하자 강승우 소위는 직접 몸을 던져 적 특화점을 파괴하기로 결심하고, 기관총 진지 근처 7m까지 포복으로 전진하여 일단 폭발물을 투척한다. 그러나 그 순간, 우측 팔에 총상을 입고 폭발물을 떨어뜨리자 뒤에 있던 안영권 일병이 잽싸게 주워 다시 투척하고, 오규봉 일병도 수류탄을 투척한다. 이후 3용사는 그대로 폭탄을 둘러맨 몸을 적의 진지로 돌진하여 기관단총 진지를 완전히 파괴하고 장렬히 산화한다. 그러자 뒤이어 중대가 공격을 재개하고 드디어 고지를 탈환하였다. 이들의 용감한 군인정신은 24회에 거쳐 뺏고 빼앗기는 격전을 치른 백마고지 전투를 승리로 종결하는데 결정적인 공훈을 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