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아침을 열며" (2010. 10. 17)
2010/09/1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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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잇값
▲ 남광우
궁금한 말이 있으면 인터넷 포털에 그 낱말을 쳐보곤 한다. 어떤 20대 청년이 ''내 용돈으로 게임기를 사려고 했더니 사람들이 나잇값 좀 하라고 하는데 도대체 나잇값이란 게 뭐죠·'' 라고 물었다. 여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철없음을 뜻한다거나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못할 때 나잇값을 못한다고 한다는 답변, 그 나이에 그 말을 모르니 정말 나잇값을 못하는 것이라는 답도 있었다. 어떤 댓글은 뜬금없이 ''나이 한 살에 삼만 칠천 원이니 열 살이면 삼십 칠만 원이라는 거죠.'' 라는 허접한 글도 있어 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한 살 더 먹으면서 3만 칠천 원의 세뱃돈(나잇값)을 받았나보다.
요즘에 나이 든 분들이 가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거나 여성의 경우 쫄바지 같은 옷도 마다않는 어른들이 있다. 사실 그런 복장이 잘 어울린다면야 개성으로 인정해 주겠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괜히 젊은이를 따라 하는 것 같아 좀 방정맞아 보인다. 또한 어른들이 인터넷에 횡횡하는 젊은이들의 국적도 없는 비어, 속어를 애써 따라 쓰는 걸 보면 서글프다.
아이들이 휴대전화 메시지를 주고받는 일부 줄임말들은 재기발랄 한 것도 있지만 대개 어른들이 따라서 하기엔 어색할 뿐이다. 그런데 철없는 성인들이 그런 걸 대단한 유행인양 서슴없이 쓰는 걸 보면 조금 과하게 말해 줏대 없어 보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어쩌면 이 말은 나이 든 것이 겨우 숫자만 늘린 하찮은 것이란 뜻도 담긴 듯하다. 동년배에 비해 다소 젊어 보인다거나 건강이 좋다면 부러운 일이긴 하다. 그렇다고 나이 든 것을 통째로 폄하면 안 될 일이다. 요즘은 세상이 경박하여 영향력이 큰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에 온통 10대, 20대들이 판을 치고, 상업광고 역시 젊은이들을 주된 소비층으로 삼으니 우아하고 중후한 멋이란 없어지고 단세포적인 것들만 횡횡한다.
나이는 경륜이요, 지혜다. 연륜이 차고 사회적으로도 안정을 찾아가는 나이 든 어른들이 제대로 나잇값을 해야 한다. 무작정 젊음이 좋다고 그들을 따라할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학식과 세상을 살아온 경험으로 젊은이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늙었다고 할 순 없지만 젊지도 않은 중년 나이다. 나는 별 탈 없이 이만 나이가 된 것에 감사하고 있다. 이 나이가 되니까 손안의 인형 같던 아이들도 어느새 성년이 되고, 여러 남매들도 이미 중년과 노년이 되어 다정하게 살고 있다. 또한 아직 작은 일이나마 하는 일이 있어 남에게 폐가 되지 않으니 지금의 나이가 내겐 딱 좋다고 느끼고 있다. 물론 생각해보면 20대엔 20대라 좋았고, 30대는 30대라서 좋았다. 그리고 60, 70엔 나이 먹어 좋을 것이다.
몇몇 지인들은 ''머리에 염색만 하면 훨씬 젊어 보일 텐데'' 라며 걱정하지만 ''지금은 빠지는 게 문제지 하얘지는 건 문제가 아니다''거나 ''이 머리 될 때까지 얼마나 돈이 많이 들었는데'' 라며 같이 웃곤 한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나이 한 살 더 먹으려면 수 천만 원 쯤은 든다. 그러니 나이란 한 해에 몇 천만 원 든 훈장처럼 값나가는 것이다.
어떤 어르신은 탓할지도 모르겠다. ''나이 먹어 좋다고· 팔구십 돼 보라!''고. 필자가 지금 쉬 답할 순 없다. 그러나 30년 후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 좋다. 지금껏 오래 살아서 좋았는데, 이제 삶을 마칠 때가 되니 또한 좋구나!'' 라고. ''모진 세월 가고 / 아아 편안하다 /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시다.
2010-09-15 오전 12:00:00 © 충북일보(http://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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