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광주전남 평화통일 학생시민기자단 및 DMZ 체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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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 광주.전남도회 | 등록일 | 2019-11-08 오전 11:25:25 | 조회수 | 1089 |
시민의소리와 광주·전남재향군인회가 공동 주최한 이번 행사는 두 가지 목적을 두고 진행됐다. 학생기자단은 DMZ 현장을 직접 보고 분단된 남북 현실에 대한 체험과 함께 학생기자로서 평화통일이 이뤄질 때 까지 새로운 인식의 전환과 역할을 소소하나마 해보겠다는 다짐에서 비롯됐다. 광주를 벗어나기도 전에 새벽잠을 설치고 차량에 오른 학생들을 향해 양유술 광주전남재향군인회 사무처장이 일어나 멘트를 날린다. “학생 여러분, 지금 집에서 잠을 자고 있다면 꿈을 꾸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버스 안에 있는 학생기자단이 비록 힘들지만 평화통일의 꿈을 노래하면 반드시 그 꿈은 이뤄집니다”라는 반기문 전 유엔 전 사무총장의 말을 인용한다. 이에 뒤질세라 행사진행을 위해 하루 전에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온 김용진 강사가 바통을 잇는다. 김 강사는 버스에 걸린 TV를 통해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의 참상을 영상으로 꾸민 화면을 보여준다. “여보 눈 좀 떠봐, 무슨 일이 일어났나 봐요”라고 시작된다. 1950년, 그러니까 69년 전 북한군의 침략에 서울은 3일 만에 함락되고, 대한민국 수도는 3개월 만에 낙동강 이남으로 물러난다. 인천상륙작전→9월28일 서울 수복→압록강 진군→중공군 개입→12월24일 흥남 국군 철수→해 바뀌어 51년 1·4후퇴→국제 연합군 도움에 힘입어 오늘의 휴전선은 그렇게 남북을 갈라놓았다. 53년 7월이다. 이 과정에서 참여한 나이 어린 학생들이 학도병으로 참전해 미처 피지 못한 청춘을 국가에 바쳐야 했다. 그래서 DMZ니, 비무장 지대니, 휴전선이라는 단어는 굳이 비교해서 설명하지 않아도 비극의 아픔으로 다가오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6·25 비극에 앞서 우리 민족의 뼈아픈 치욕을 보여주는 ‘남한산성’이 TV 화면으로 소개된다. 조선 인조가 청나라의 침략에 강화도로 도망치려다 길이 막히자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게 된다. 1636년의 병자호란 때의 일이다. 47일간의 항쟁에도 불구하고 인조는 청에 무릎을 끓는다. 당시 인조 임금은 척화파 김상헌이 그동안 명나라와의 의리와 명분, 원칙을 내세워 오랑캐인 청나라와 싸워야 한다고 나섰지만 이에 맞서 “임금이 살아야 백성이 편안하다”는 주화파 최명길의 건의에 따른다. 결국 인조는 남한산성 밖으로 나와 푸른 수의를 입고 무릎을 꿇음으로써 가슴 아픈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어 글쓰기 강좌가 이어 진다. 시민의소리 기자가 마이크를 잡는다. 남한산성의 영상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던 학생들을 향해 미국 로버트 시인의 ‘가지 않는 길’이라는 시 구절을 인용한다. 학생기자단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두 가지 길이 나타난다고 역설한다. 고등학교 때엔 문과로 가느냐 이과로 가느냐에서부터, 대학에 이어 직업을 선택할 때 반드시 ‘가지 않는 길과 자주 다니던 길’이라는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어떤 선택을 하느냐로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자신은 가지 않는 길을 택한다”고 강조하면서 “학생의 입장이라면 자신이 가장 재미있어 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라”고 주문한다. 마치 인조가 척화파와 주화파의 두 갈래 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조선시대의 운명이 달라졌듯이 말이다. 지루함도 잊은 채 버스가 서울로 들어서자 안보 교육도 중요하지만 4차산업혁명시대 변화를 보여주는 영상으로 바뀐다. 경기도 파주의 오두산 통일전망대로 진입한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망원경을 통해 바라본 북녁 관산반도 청명한 가을 하늘이 상큼하게 비쳐온다. 북녘의 관산반도에서 불어오는 바람인지 알 수 없으나 아무튼 버스 안 공기와 사뭇 다르다. 전망대로 올라가서 좌측으로는 남쪽이, 오른쪽으론 북한이 함께 보인다. 망원경에 눈을 대고 유심히 관찰해보니 황폐한 산야에 3층짜리 건물이 보이고 북한 주민들의 모습은 별로 찾아보기 쉽지 않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구절’이 눈에 확 들어온다. 전망대 3층으로 모인 학생들 앞에 김문석 사)미래사회교육원장이 서있다. 개성공단 초코파이를 사례로 들며 “오천년 역사의 출발점을 한 민족, 한 형제, 한 나라 였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서 “함께 잘 살아야 한다”며 피곤한 듯한 학생들을 위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목청껏 쏟아낸다. 어릴 적 많이 불러보고 들었던 이 노래가 이날만큼은 가슴에 찡하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통일은 어떻게 이뤄져야 한단 말인가. 과거처럼 핵무기와 신형 장비로 무장한 국가가 먼저 침략해서 땅을 뺏는다고 해서 되는 세상은 이미 지났다. 전쟁 보다는 남과 북이 문화 교류와 소통을 통해 공감대를 우선적으로 형성해야 한다. 독일 통일이 이뤄지는 데는 언어의 통일, TV 시청, 도량형 통일, 우리의 남북이산 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처럼 남북간 교류가 선행돼야 한다. 이런 통일 문화운동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서로 만나 남북을 오가는 퍼포먼스를 통해 역사적인 획을 그었지만 통일전망대에는 두 지도자의 영상이나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2층 극장에서 보여준 영상은 70년대 기자가 봤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고루한 내용에 불과했다. 통일 전망대란 이름도 그렇지만, 정부가 운영하는 건물에서 통일을 향한 전망과 비전, 그리고 로드맵은 볼 수 없다. 반면 북한은 찌 들고, 못 살고 형편없다는 내용의 영상을 틀어주고 있으니 언제까지 이런 고답적인 행태를 되풀이 할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그러려면 차라리 입장료를 어린 학생들에게 받지 말고, 국가에서 부담해야 되지 않나 싶다. 4차산업혁명시대를 앞둔 학생기자단의 눈망울은 안보 교육의 프레임도 중요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내건 슬로건처럼 변화와 혁신에 의한 통일 방식을 요구한 듯싶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처럼 점심을 먹고 임진각으로 향했다. 녹슬은 철마가 기다리고 있는 독개다리로 가기 전 소녀상이 나란히, 사이좋게 놓여있다. 옴서 감서 위안부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의 모습에서, 강제로 끌려가 어쩔 수 없이 위안부 역할을 한데 대한 위로와 격려를 풋풋한 미소로 화답하고 있다. 끊어진 철교 교각에 박힌 총탄 자국 조금 더 걸음을 옮기니 그 옛날 ‘칙칙 폭폭~우우우’소리를 내며 신의주와 평양을 오가던 증기기관차가 학생들을 맞이한다. 끊어진 다리 밑으로 비치는 온갖 잡초가 풍상의 깊이를 비춰주기라도 하듯 왠지 모를 처연함을 느끼게 한다. 철교 마지막에 버티고 서 있는 철재 앞에 다다르니 이제는 갈 수 없으니 뒤돌아 가란다. 학생기자단도 가고 싶고, 철마도 달리고 싶고, 그래서 남북이 하나 되고 싶은데... 동강난 철교를 왜 이리 끊어놨느냐고 외쳐 봐도 북녘 하늘은 말이 없다.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학생기자단은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임진각을 넘어 DMZ내에 있는 제 3땅굴을 견학하기로 예정됐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놈의 아프리카 돼지열병 때문에 가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광주에서 멀리 달려왔는데 이날 체험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땅굴을 가지 못하게 됐으니 어찌하랴. 이런 실망감 속에 ‘잃어버린 30년’이라는 가요가 흘러나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 불어도 그리 웠던 30년 세월, 의지할 곳 없는 이 몸 서러워하며...’ ‘망향’이란 시를 새긴 비문을 바라본다. 통일의 노래는 못 부를 망정 ‘망향가’라도 읊조릴까 보다. 출처 : 시민의소리(http://www.siminsor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