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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4년 1월의 호국인물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4-01-03 조회수 1870
파일첨부 monthlyp2_2014010213244155.jpg

김수현 대위는 1941년 3월 26일 서울 성동구에서 김용태 선생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953년 흥인국민학교를 거쳐 1956년 경기중학교와 1959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한 뒤 1965년 한국과 미국 의사면허시험에 합격하였다.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인턴을 수료한 후 해군에 입대하여 해군의무단 주특기 교육을 마쳤으며, 1966년 6월 23일 해병대 외과군의관으로 부임하였다. 베트남전쟁이 발발하자 김수현 대위는 1966년 11월 3일 주월 제2해병여단 3대대 의무실장으로 참전하였다.

제2해병여단은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 일대 전술책임지역에서 휴전기간 동안 증강된 적을 탐색 소탕하기 위해 1967년 1월 5일부터 10일간 투망작전을 실시하였다. 그때 제3대대는 전방 지휘소를 설치하기 위해 헬기로 짜빈박 마을 남쪽 90고지에 위치한 제9중대 기지로 이동하였다. 작전은 헬기를 이용하여 베트콩의 예상 은거지에 착륙한 후 수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상악화로 작전이 연기되고 헬기지원이 어려워지자 제3대대는 1월 10일 오후 2시 제9중대 기지를 출발해 짜빈박 마을을 거쳐 안디엠 마을까지 4km의 구간을 도보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 구간은 평소 제9중대의 보급 추진 등으로 병사들이 자유롭게 출입하던 곳이었다. 제9중대에서 차출된 제2소대가 전위부대로 경계를 하고 대대본부요원 31명은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이미 하루 전부터 200여 명으로 편성된 베트콩은 짜빈박 마을 일대에 잠입해 한국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베트콩의 무차별 기습공격이 시작되면서 주로 권총과 소총만 소지한 제3대대는 적의 자동화기 사격으로 큰 위험에 빠졌으나 신속히 몸을 은폐하면서 접근해오던 적에게 대항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대 작전보좌관 조경식 대위와 소대장 전창우 소위 등은 장렬히 전사하면서까지 적에게 작전기밀을 탈취당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분투하였다.

여단본부와 통신은 두절되고 유탄이 마구 떨어지는 상황에서 김수현 대위는 적의 공격으로 대퇴부에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본대가 철수한 뒤까지 현장에 남아 부상병을 치료하던 중 적의 수류탄 공격으로 장렬히 전사하였다. 김수현 대위는 죽어가면서까지 군의관으로서 자기 본분에 최선을 다하였던 것이다. 김수현 대위의 이러한 희생을 통해서 우리군은 적사살 140명, 추정사살 95명, 포로 5명, 귀순 15명, 용의자 71명을 생포하고 소화기 4정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한편 아군은 전사 32명, 부상 54명, 그리고 소화기 14정이 손실 되었다.

이에 정부에서는 1967년 1월 10일 김수현 대위의 애국 충정과 살신성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대위로 1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하였다. 이후, 김수현 대위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1968년 4월 12일 진해 해군해양의료원에 충혼탑이 건립되었다. 우리는 자신의 생명을 내던지면서도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전우들을 보살폈던 김수현 대위의 사명감과 용맹함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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