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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4년 1월의 6.25 전쟁영웅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4-01-03 조회수 2992
파일첨부 20140101.jpg

“대한민국의 공군에게 포기란 없습니다.”

1월의 6∙25전쟁영웅은 불굴의 투지로 임무를 완수하여 대한민국 공군의 위상을 드높인 유치곤 공군 준장입니다.

6·25전쟁 당시 평양에서 동북방으로 10km 지점에 대동강 지류인 남강에는 철교가 걸려있었는데요. 그 철교는 바로 6·25전쟁 때 공군의 성공적인 3대 작전 중의 하나였던 ‘승호리 철교’입니다.

1952년 1월 중순 6·25전쟁 당시 승호리 철교는 막대한 군수물자를 만주와 평양을 거쳐 중동부 전선으로 수송하는 적 후방보급로의 핵심 요충지였답니다. 적 보급로 차단을 위해서 철도는 항상 공중 공격의 목표가 되었는데요. 승호리 철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하여 미 제5공군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의 후방보급로 차단을 위해 승호리 철교 폭격작전을 36회에 걸쳐 계획하고 출격하였는데요. 그러나 실패만을 거듭하게 되었고, 대한민국 공군에게 그 임무를 부여하였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공군은 1950년 7월 2일 최초로 F-51 전폭기 10대를 미 극동공군으로부터 지원 받아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으며, 1952년 초까지 단 15대의 전폭기로 작전에 임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는데요. 그러나 한국공군의 전투조종사들은 참전한 어느 국가의 공군보다 우수한 기량으로 사기충천한 상태였으며, 주어진 임무를 성공리에 완수하는 투혼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1952년 1월 15일, 세 번째 출격에 나선 우리 공군의 F-51 전폭기는 마침내 철교를 두 동강 내는 데 성공하는데요. 이 폭격은 유치곤 공군 준장을 비롯한 우리 조종사들이 불굴의 투지로 완수한 빛나는 업적으로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의 성공으로 당시 유엔군은 물론 미국 대통령까지도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로 대한민국 공군의 위상은 크게 주목 받았습니다. 6·25전쟁 이후 유치곤 장군은 전후방 전투지휘관으로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던 중 1965년 1월 1일 대구의 제107기지단장으로 재직 중 과로로 순직하였습니다.
유치곤 장군이 살아 생전 세운 전공으로 인해 1951년 충무무공훈장 수상을 비롯해 1952년 미 수훈비행십자장, 미 비행훈장, 을지무공훈장, 공비토벌기장, 6·25종군기장을 그리고 다음해에는 은성을지무공훈장, 무성충무무공훈장, 금성을지무공훈장, 대통령수장 등을 수여 받았으며, 순직 후에는 5등 근무공로훈장을 추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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