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통령의 눈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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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 충북진천군재향군인회 | 등록일 | 2003-12-18 오전 8:49:49 | 조회수 | 882 |
\r\n나라의 안보가 걱정되고 정국이 불안할때마다 떠오르는 대통령 박정희.. 오늘 그에 발자취를 뒤돌아 봄니다 \r\n \r\n \r\n1964년 12월 10일 오전 10시55분, 독일(당시 서독) 루르 지방 함보른 탄광의 한 공회당. 얼굴과 작업복에 석탄가루가 묻은 500여명의 한국인 광부, 한복차림의 한국인 간호사, 독일인들 앞에 당시 독일을 방문 중인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나타났다. 실내에 애국가가 울려퍼졌지만 “동해물과 백두산이…” 가사는 들리지 않았다. “대한사람 대한으로…”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서야 박 대통령과 광부, 간호사들의 목멘 소리가 간신히 들렸을 뿐이다. \r\n \r\n \r\n“여러분, 난 지금 몹시 부끄럽고 가슴 아픕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했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합니다. …나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이렇게 타국에 팔려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정말 반드시….” \r\n \r\n떨리는 목소리로 계속되던 박 대통령의 연설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광부, 간호사뿐 아니라 곁에 있던 육영수(陸英修) 여사, 뤼브케 서독 대통령도 손수건을 꺼내 들면서 공회당 안은 ‘눈물 바다’로 변했다. \r\n \r\n당시 청와대 경제고문 자격으로 박 대통령 통역을 맡았던 백영훈(白永勳·74·전 중앙대 교수) 박사는 “탄광을 떠나는 승용차 안에서 박 대통령은 ‘내가 죄인이다’라며 눈물을 흘렸고, 옆에 있던 뤼브케 대통령이 ‘울지 마십시오. 분단된 두 나라가 합심하여 경제부흥을 이룹시다’라고 위로하는 말을 통역하면서 나 역시 울었다”고 회고했다. \r\n \r\n가난한 조국에서 수십 대 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광부와 간호사 1진 600여명이 서독에 처음 도착한 때는 1963년 11월이었다. 이날은 타국생활을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머나먼 조국에서 온 대통령과 만나는 자리였던 것이다. \r\n \r\n1961년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조국근대화’ 기치를 내걸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지만 극심한 외자(外資)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r\n \r\n이때 박 대통령이 달려간 곳이 독일이었다. 독일은 당시 우리처럼 분단상황이었고,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린 눈부신 경제발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 정부는 경제사절단을 독일에 파견해 차관 제공을 간곡히 요청했고, 독일측은 아시아 수출시장을 넓히려는 의도하에 1억5000만 마르크의 상업차관 제공을 결정했다. 그러나 남은 문제는 과연 지급보증을 누가 서느냐였다. \r\n \r\n“당시 우리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지급보증을 받아올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한 방안이 서독에 광부 5000명과 간호사 2000명을 파견하는 것이었죠.”(백영훈 박사) \r\n \r\n결국 이 지급보증 문제는 독일에서 일하는 우리 광부와 간호사들의 3년간 급여를 독일은행인 ‘코메르츠 방크’에 매달 강제 예치하는 담보방식으로 해결됐다. 박 대통령이 “타국에 팔려나왔다”고 우리 광부와 간호사들을 눈물로 위로한 것도, 차관도입을 둘러싼 바로 그 사연 때문이었다. \r\n \r\n당시 독일을 방문한 박 대통령의 관심을 끈 것은 독일의 곳곳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아우토반(Autobahn)’이었다. 방독(訪獨) 첫날 본에서 쾰른으로 이동하는 20㎞ 구간의 아우토반을 지나가면서 박 대통령은 두 차례나 중간에서 차를 멈추게 했다. \r\n \r\n박 대통령은 독일인 실무자들에게 “고속도로 건설은 어떻게 했느냐, 건설비는 얼마나 드느냐” 등 꼬치꼬치 물었고, 메모지에 답변내용을 꼼꼼히 적었다. 백 박사는 “당시 박 대통령이 메모지에 남한의 지형도를 그리는 것을 보았다”며 “아마 그때 경부고속도로의 구상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후 백 박사는 1965~66년 독일을 오가면서 박 대통령이 요구한 고속도로 관련자료를 모아오는 역할을 맡았다. \r\n \r\n우리나라의 첫 고속도로인 서울~인천간 경인고속도로가 개통된 것은 박 대통령의 독일방문 이후 4년이 지난 1968년 12월 21일이었다. 이어 한국경제의 대동맥 역할을 한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것은 1970년 7월 7일로, 박 대통령이 독일 아우토반에서 차를 세운 지 6년 만에 우리도 명실상부한 ‘한국의 아우토반’을 갖게 된 것이었다. \r\n \r\n(박용근기자 ykpark@chosun.com ) \r\n \r\n조선일보 \r\n입력 : 2003.09.08 \r\n \r\n\r\n\r\n걱정 되시죠?이리로 오십시요.. |